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이재규 감독님은 사실 제가 고등학교 시절 출전했던 청소년 독백 연기 대회의 심사위원이셨어요. 당시 다니던 학교의 교수님이셨고 전 학생이었죠. 언젠가 작품 속 연기자로 이재규 감독님을 만나는 게 꿈이었는데 그걸 ‘지금 우리 학교는’으로 실현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죠.”공개 직후 넷플릭스 TV 부문 글로벌 스트리밍 1위를 휩쓴 오리지널 시리즈 ‘지금 우리 학교는’(연출 이재규, 이하 ‘지우학’)에서 매력적인 빌런 캐릭터로 세계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은 배우 유인수가 연출의 이재규 감독이 자신의 연기 인생 은인이라 밝히며 답한 대목이다.
유인수는 최근 취재진과 대면 인터뷰를 통해 ‘지우학’의 악역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소감과 작품 출연 이후 느낀 변화, 촬영 과정에 대한 전반적인 소회를 솔직담백히 털어놨다.
지난달 28일 넷플릭스로 공개된 ‘지우학’은 좀비 바이러스가 퍼진 한 고등학교에 고립돼 구조를 기다리는 학생들이 살아남기 위해 손을 잡고 사투를 벌이는 이야기를 담았다. 2009년 주동근 작가가 쓴 동명의 인기 네이버 웹툰이 원작으로, 드라마 ‘다모’, ‘베토벤 바이러스’를 비롯해 영화 ‘역린’ ‘완벽한 타인’ 등 흥행작을 배출한 이재규 감독의 첫 OTT 도전작으로 화제를 모았다.
1998년생으로 올해 24세인 유인수는 지난 2017년 드라마 ‘힘쎈여자 도봉순’으로 데뷔해 영화 ‘기억의 밤’과 웹드라마 ‘복수노트’, 드라마 ‘학교 2017’, ‘부암동 복수자들’, ‘내 ID는 강남미인’, ‘열여덟의 순간’, ‘초콜릿’, ‘비밀의 숲2’, ‘멀리서 보면 푸른 봄’ 등 장르의 경계를 가리지 않은 꾸준한 다작으로 연기 내공을 쌓았다. 그간 작품에서 주로 단역이나 감초 조연으로 등장한 그는 넷플릭스 ‘지우학’에서 인간에서 좀비보다 더한 괴물로 거듭난 악인 윤귀남 역을 맡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극 중 윤귀남은 일진 무리에서 2인자 콤플렉스를 지녔던 인물로, 바이러스가 퍼진 뒤 인간의 지능을 가진 채 살아있는 좀비가 되고 이를 통해 엄청난 힘을 얻으면서 점점 더 악랄하고 잔인한 괴물이 되는 캐릭터다. 자신의 한쪽 눈을 잃게 한 청산(윤찬영 분)을 복수하기 위한 집념과 끈질긴 생명력으로 끊임없이 극에 긴장감을 선사한다.
유인수는 먼저 “이렇게 많은 취재진과 얼굴을 보며 인터뷰하는 게 배우 인생 통틀어 처음이라 감동”이라며 “이렇게 작품이 잘 됐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감독님과 배우, 스태프분들 모두가 몸과 마음을 사리지 않고 최선을 다한 결과물이라 더욱 뜻깊다”고 흥행 소감을 전했다.
유인수는 오디션을 거쳐 발탁된 대부분의 배우들과 달리, 이재규 감독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캐스팅이 성사됐다. 유인수는 “고등학교 시절 청소년 독백 연기 대회에 나갔을 당시 감독님이 심사위원이셨고, 학교의 교수님이셔서 이전부터 인연이 있다”며 “감독님이 먼저 미팅으로 자리를 만들어주셨다. 당시 교수님은 ‘나중에 학생물 같이 하자’고 말씀해주신 뒤 소식이 없으셨는데, 한 두 달 뒤 ‘지우학’으로 캐스팅 연락을 주셨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재규 감독 역시 취재진과 인터뷰를 통해 유인수와의 남다른 인연을 언급한 바 있다. 유인수는 “감독님이 인터뷰에서 말씀하신 뒤 어릴 때 나간 독백 연기 대회 영상이 SNS상에서 역주행 중이더라. 너무 부끄럽지만 그만큼 많은 관심을 보여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수줍음을 드러냈다.
극 중 2학년 5반 친구들과 대립하는 또 다른 주인공으로 여겨지는 비중있는 역할에 부담을 느낀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그는 “부담은 컸지만 감독님이 저를 믿고 윤귀남이란 인물을 주신 만큼 믿음과 기대를 충족시켜드리고 싶었다”며 “원작을 본 독자들도 가장 기억에 남는 캐릭터로 귀남이를 언급할 정도였다. 그런 인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원작을 읽어본 뒤 책임감이 더 커졌다”고 털어놨다.
자신만의 ‘귀남’을 탄생시키고자 오히려 원작 속 귀남 역할을 따라가지 않으려 노력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유인수는 “원작 캐릭터를 그대로 따라가면 표면적인 악역으로만 비춰질 것 같았다”며 “원작 속 귀남은 타고난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서사 없는 악당이었다. 저는 시리즈 ‘지우학’은 원작과 달리 사람 이야기를 하는 작품인 만큼, 다른 결로 접근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마냥 악한 악당보다는 평범한 인간이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떠올렸다.
또 “평범한 인물이 어떤 사건을 계기로 주체할 수 없는 큰 힘을 얻었을 때 과시욕을 표출하고 싶어하고, 그러면서 점점 괴물이 되는 과정을 현실감있게 표현하려 했다”며 “그런 행동을 어른이 아닌 학생이 저질렀을 때 느낄 오묘한 지점도 노렸다”고 부연했다.

주로 팀을 이뤄 합을 맞춘 2학년 5반 친구들이나 양궁부 배우들과는 달리 혼자 동 떨어져 촬영한 적이 많아 외로움도 느꼈다고 토로했다. 유인수는 “본격 촬영 전 함께 연습하는 기간에 미리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이 많았다”면서도 “촬영 들어가고 나니 친했던 친구들이 같이 합을 맞춘 다른 배우랑 어느순간 더 친해져 있더라. 조금 동 떨어진 느낌이 있었지만, 귀남이 자체가 이질적인 인물이니 일부러 거리감을 유지하려 노력한 점도 있다”고 말했다.
극 중 윤귀남은 끊임없이 높은 곳에서 추락하며 위기를 맞는 상황에도 복수를 이루고자 몇 번을 다시 살아나며 청산을 집요하게 쫓는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선 ‘청산 바라기’란 우스갯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유인수는 이에 대해 “귀남이가 청산이를 쫓아야만 하는 첫 번째 욕구는 ‘과시욕’이라고 생각했다”며 “존재감 없던 2인자가 좀비 세계관의 최강자가 되며 즐거움을 느끼고, 남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짜릿함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했다. 청산이를 쫓은 것은 교장을 죽인 자신에게 ‘아무것도 아니다’라 말한 그의 말에 ‘내가 강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한 과시욕에서 나온 행동”이라고 설명했다.
또 “인간 귀남일 땐 여러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던지며 숨가쁘게 도망다녔지만, 좀비가 되고 난 뒤에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그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걸음걸이나 눈빛에서도 여유가 느껴지게 변화를 줬다”고도 덧붙였다.
가장 애를 먹은 부분은 액션이었다고. 그는 “육상선수 출신에 등산을 취미로 여길 정도로 운동을 좋아하지만 액션 연기는 별개더라”라며 “정말 말도 안되는 실력이라 대부분의 장면에 대역을 써야 하나 액션팀이 고민했을 정도였다. 액션팀 사무실이 집과 가까워서 매일 연락을 드리며 연습을 요청했다. 함께 연기해주신 대역 형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회상했다.
반 좀비의 역할을 참고할 만한 다른 작품들이 많이 없어서 동물 다큐멘터리의 도움을 받았다고도 설명했다. 유인수는 “눈빛 연기에 가장 많은 공을 들였다. 한 쪽 눈을 잃은 상태로 눈 한 개로 모든 감정을 표현해야 했기에 수없이 연습했다”며 “사냥 직전의 동물의 눈빛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 눈빛에 임팩트를 주기 위해 평소 행동을 작게 표현한 것도 있다”고 말했다.
시즌 2 출연에 대한 소망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저와 같은 ‘절비’(반은 인간 반은 좀비)들이 살아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뒀던 만큼, 저 역시 이후 내용이 궁금해 감독님께 여쭤본 적이 있다”며 “아직 구성 단계라고만 말씀하시더라. 이런 작품을 시즌 2로 다시 한 번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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