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민 기자] 국내 상장사 가운데 미래 실적 전망치를 공시하는 기업이 코스피 시장에서는 전체 7%, 코스닥은 1%에 불과할 정도로 ‘전망공시(실적 가이던스)’ 제도가 크게 위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 실적 변동성에 따른 사후 관리 부담과 불성실공시 제재 위험 탓에 기업들이 보수적으로 돌아선 탓이다.
전문가들은 전망공시가 어닝 시즌(실적 발표 기간)의 급격한 주가 변동성을 낮추고 중소형주의 정보 비대칭을 해소하는 등 투자 판단에 유용한 수단인 만큼, 모호한 법적 면책 기준을 다듬어 제도 활성화를 유도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20년 새 5분의 1 토막… 통신서비스 빼면 ‘공시 실종’30일 자본시장연구원(자본연)이 발간한 ‘전망공시의 현황과 특성 및 정보가치’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전체 상장사 가운데 전망공시를 낸 기업 비중은 코스피는 약 7%, 코스닥은 약 1%에 불과한 것으로 조사됐다. 전망공시 건수로 보면 코스피는 78건, 코스닥은 50건에 그친다. 제도 도입 초기인 2000년대 중반 코스피와 코스닥 모두 상장사의 20%가량이 전망공시를 냈던 것과 비교하면 급격히 줄어든 셈이다.
자본연이 2002~2025년 한국거래소 공시시스템(KIND)에 올라온 전망공시 5796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업종별 양극화도 뚜렷했다. 통신서비스 업종의 경우 가입자 수와 ARPU 등 내부 영업지표의 예측가능성이 높아 전망공시 비율이 2018~2025년 평균 42.6%에 달했으나, 원자재·환율 민감도가 높은 IT(2.5%), 필수소비재(1.4%), 금융(1.6%), 의료(2.4%) 등 다수 산업에서는 공시가 사실상 실종됐다.
전망공시는 기업이 향후 경영 성과에 대한 예측 정보를 투자자에게 자발적으로 공개하는 제도로 지난 2002년 도입됐다. 분기·연간 실적 등 정기 재무공시가 이미 지나간 성과를 보여준다면, 전망공시는 경영진이 보유한 사업계획을 바탕으로 미래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만 단일 수치 위주의 경직된 공시 관행과 면책 범위의 불확실성 등으로 기업들이 자발적 정보 제공을 점차 기피하는 현상이 굳어지고 있다.
이하윤 자본연 연구위원은 “전망공시가 장기 위축된 배경에는 공시 이후 이를 계속 수정·관리해야 하는 부담과 함께, 실적이 빗나갔을 때 어디까지 보호받을 수 있을지에 대한 제도적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다”며 “현행 규정상 ‘합리적 근거로 성실히 작성하면 면책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수주잔고나 환율 가정을 어느 수준까지 공개해야 합리적으로 인정받는지 가늠할 구체적 가이드라인이 없다”고 짚었다.
특히 국내 주식시장은 애널리스트의 분석보고서가 대형기업에 집중되어 있고, 기업설명회(IR)를 통한 자발적인 정보제공 역시 충분히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전망공시는 기존 정보채널의 공백을 보완하고 투자자의 정보 접근성을 높일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지만, 기업들의 보수적 공시 관행 속에 장기간 극심하게 위축돼 온 것이다.
이 연구위원은 “국내 증시는 애널리스트 리포트의 70%가 대형주에 쏠려 있어 중소형 상장사의 정보 공백이 매우 심각하다”며 “경영진의 전망공시는 이러한 정보 비대칭을 완화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할 수 있는 강력한 보완재”라고 강조했다.
◇“정확한 공시, 실적 쇼크 줄여…정정공시 낙인 지워야”실제로 자본연 조사에서도 전망공시는 시장가격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이 내부적으로 바라보는 미래 실적 관련 정보를 제공한다는 의미에서다.
자본연의 분석에 따르면 증권가 애널리스트 예상치 평균(컨센서스)을 웃도는 전망치를 공시한 상장사의 누적평균초과수익률(CAAR)은 약 0.7~0.8% 상승했다. 반면 시장 컨센서스를 밑도는 추정치를 내놓은 상장사의 CAAR은 -0.9~-0.4%로 하락했다. 둘 다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증권가보다 높은 예상치를 공시한 상장사의 주가는 올랐고, 낮은 전망치를 내놓은 상장사는 약세를 보였다는 뜻이다.
적절한 전망공시는 주가 변동성을 최소화하기도 한다. 이 연구위원은 “기업이 발표한 전망치가 기존 시장의 예상과 다를 경우 전망공시 시점에 주가가 반응하고, 이후 실제 실적이 기업 전망치와 다르게 나타나면 실적 발표 시점에서도 추가 가격 조정이 발생했다”며 “전망치가 실제 실적에 가까울수록 실적 발표 시점의 추가적인 가격 조정이 상대적으로 작아지는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자본연은 전망공시 제도 활성화를 위해 기업이 합리적인 미래정보를 자발적으로 제공할 수 있도록 예측가능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행 제도에도 예측정보의 성실한 작성과 주요 요건 충족 시 일정한 면책이 가능하지만, 면책 적용 범위를 기업이 사전에 판단하기 어려운 만큼 면책의 구체적인 판단 기준과 적용 사례를 제시할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다.
이 연구위원은 “실적 전망을 사후에 수정하는 것을 ‘전망이 틀려서 발생한 예외적 사고’로 볼 것이 아니라, 분기 실적 발표 등을 계기로 가정을 업데이트하는 자연스러운 지속적 소통 과정으로 정착시켜야 한다”면서 “기업들도 단순히 ‘회사 내부 계획에 근거함; 같은 형식적 문구만 적어놓고 면책을 바라면 안 되고, 수주잔고와 환율 가정, 판매량 증가율 등 실질적 근거를 공개해야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구간 전망 등 공시의 질적 구성 역시 개선 과제로 꼽았다. 2002년부터 2025년까지 누적된 전망공시 5796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 전체 전망치의 98%가 특정 단일 수치만을 적어내는 ’점 추정(Point Forecast)‘이었다. 상·하한 범위를 두는 ’구간 추정‘은 고작 2%에 불과했다. 미국 S&P 1500 기업의 경우 매출 가이던스의 약 74~87%, 주당순이익(EPS)의 85% 이상을 구간 추정으로 제시하는 것과 정반대다
이 연구위원은 “국내 전망공시의 98%가 단 하나의 숫자로 제시되는 데이터를 보고 처음엔 깜짝 놀랐다”며 “미래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을 감안할 때 경영진이 인식하는 합리적인 범위를 전달해야 마땅한데, 단일 숫자에 매몰되다 보니 기업은 부담을 느끼고 시장은 오차에 취약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자본연은 전망공시 활성화를 위한 정책 과제로 △미국 증권민사소송개혁법(PSLRA) 방식의 구체적 면책 적용 기준 및 사례 제시 △합리적 상·하한을 두는 구간 전망 서식 유도 △정정공시를 ’실패나 사고‘가 아닌 ’정상적인 정보 갱신 및 정기 소통‘으로 수용하는 관행 정착 △수주잔고·환율·원가율 등 핵심 가정의 구체적 기재 등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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