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흑자 1천억달러 돌파…커지는 트럼프 ‘투자 청구서’ 우려

입력시간 | 2026.11.02 16:31 | 정두리 기자 | duri22@edaily.co.kr

[이데일리 정두리 기자] 대미 무역흑자가 사상 처음 1000억달러를 넘어섰지만, 기록적인 수출 성과 뒤로 통상 압박의 그림자도 짙어지고 있다. 인공지능(AI) 특수로 불어난 흑자가 트럼프 행정부의 더 큰 ‘투자 청구서’로 돌아올 수 있어서다. 특히 사업성이 불확실한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개발사업 참여 압박까지 맞물리면서 수출 성과를 거둔 통상 당국의 셈법은 오히려 복잡해졌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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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올해 1~10월 대미 수출은 1767억 1600만달러, 수입은 744억 5000만달러로 집계됐다. 이에 따른 무역수지 흑자는 1022억 6600만달러다. 연말까지 두 달을 남겨두고 종전 연간 최대였던 2024년 556억달러의 약 1.8배를 기록했다.

10월 한 달에만 175억 7800만달러의 대미 흑자가 쌓였다. 대미 수출이 전년 동월 대비 185.8% 증가한 248억 9800만달러를 기록한 반면, 수입은 16.5% 늘어난 73억 2000만달러에 그치면서 흑자 규모가 지난해 같은 달의 약 7.2배로 확대됐다. 미국의 AI 인프라 투자 수요가 수출 증가를 견인했다. 10월 1~25일 기준 대미 반도체 수출은 전년 동기 대비 497.0%, 컴퓨터는 816.3% 급증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가 출범한 2017년 179억달러에서 10년만에 사상 처음 1000억달러를 넘어섰다.

문제는 흑자 확대가 무역불균형 해소를 앞세운 미국의 추가 압박 명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난해 한국산 제품에 25%의 상호관세를 예고했다가 한국이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자 관세를 15%로 낮췄다. 자동차·부품에 대한 품목별 관세도 25%에서 15%로 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미 흑자가 급증하면서 미국이 기존 투자 약속의 이행을 재촉하거나 추가 요구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한미 양국은 지난달 1일 대미 전략투자 프로젝트를 발표하며 투자 약속을 구체화했다. 전체 3500억달러 가운데 조선업에 배정된 1500억달러를 제외한 2000억달러 규모 전략투자 부문에서 텍사스 엔시날 가스복합화력발전소 건설을 1호 사업으로 확정했다. 미국 내 대형 원전 8기 건설도 2호 사업으로 추진하기로 큰 틀에서 합의했다.

하지만 알래스카 LNG 개발사업은 한미 간 추가 협상의 불씨로 남아 있다. 양국 공동 팩트시트에는 검토에 착수하기로 합의한 사업으로 명시돼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참여를 기정사실처럼 거론하며 투자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정부로서는 ‘상업적 합리성’이라는 원칙에 따라 참여 여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지만, 미국의 요구를 거절할 경우 관세 등 다른 통상 현안으로 압박이 번질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대미 무역흑자가 정부의 협상 여지를 더욱 좁힐 수 있는 대목이다.

구기보 숭실대 글로벌통상학과 교수는 “정부는 이미 확정한 대미 투자와 후속 협상 진행 상황을 근거로 투자 약속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다는 점을 미국에 강조해야 한다”며 “알래스카 LNG 사업은 상업적 합리성을 기준으로 신중하게 검토하되, 조선 분야에서는 민간기업과 협의해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는 투자안을 선제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는 3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 결과도 통상정책의 변수로 꼽힌다.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모두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면 트럼프 행정부가 기존 관세 정책을 이어갈 동력을 확보할 수 있다. 반대로 선거에서 크게 패하면 정책 변화에 나설 가능성도 있어 한국 기업들은 선거 이후 미국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하는 상황이다.

기존 한미 무역 합의와 별개로 추가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도 부담이다. 미국은 교역 상대국의 과잉생산·과잉설비가 자국 산업에 피해를 주는지 살펴보는 무역법 301조 조사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다. 국가안보를 근거로 특정 품목에 관세를 부과하는 무역확장법 232조도 추가 압박 수단이 될 수 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중간선거 이후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하더라도 행정명령을 중심으로 추진해온 트럼프 행정부의 통상정책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다만 의회의 조사와 예산 심의 등을 통한 견제가 강화되면 정책 추진의 불확실성이 커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어 “특히 AI와 에너지 분야는 양당의 입장 차가 있어 관련 정책의 혼선에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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