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법에 없는 양도·대여 기준, 고시 위임은 위법"…가상자산 과세 난항

입력시간 | 2026.09.01 11:37 | 서민지 기자 | mildore@edaily.co.kr



[이데일리 서민지 최훈길 정윤영 기자] 내년 1월 가상자산 과세 시행을 앞두고 국세청이 추진 중인 과세 고시 제정 작업이 출발부터 난항을 겪고 있다. 당초 가상자산의 양도·대여 개념과 스테이킹·렌딩 등 다양한 거래 유형의 과세 기준을 고시에 구체화하는 방안이 검토됐지만 현행 상위 법령의 위임 범위를 넘어설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다.

법률에 근거가 없는 과세대상을 고시에서 새롭게 정할 경우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될 소지가 있는 데다 향후 조세심판에서 고시의 효력이 다퉈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세종시에 위치한 국세청 본청. (사진=최훈길 기자)

세종시에 위치한 국세청 본청. (사진=최훈길 기자)

1일 이데일리 취재에 따르면 국세청은 지난달 24일 가상자산 과세 고시 제정을 위한 자문위원단 첫 비공개 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에서의 핵심 쟁점은 ‘고시의 범위’였다. 당초 가상자산 양도·대여의 구체적 의미를 비롯해 스테이킹·렌딩·에어드롭·하드포크 등 다양한 거래 유형의 개념과 과세상 취급을 구체화하는 방안이 논의 대상에 올랐다. 과세 시행 이후 납세자가 어떤 거래를 양도나 대여로 보고 신고해야 하는지 예측할 수 있도록 세부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자문위원들 사이에서 현행 법체계상 고시에 위임할 수 있는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우려가 잇따르면서 전체 논의 의제 5개 중 상당 부분을 소화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취득가액 산정 등 실제 세액 계산에 필요한 사항은 고시에서 보다 구체화할 수 있지만 양도·대여의 개념이나 스테이킹·렌딩·에어드롭·하드포크 등 특정 거래가 과세대상에 해당하는지까지 고시에서 정하는 것은 조세법률주의에 위배될 소지가 있다는 게 자문위원들의 판단이다.

현행 소득세법 제21조 제1항 제27호는 가상자산을 ‘양도하거나 대여함으로써 발생하는 소득’을 기타소득으로 규정하고 있다. 과세대상인 가상자산 자체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제2조 제1호의 정의를 준용한다. 하지만 정작 가상자산의 ‘양도’와 ‘대여’가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를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정의를 두고 있지 않다.

하위법령인 소득세법 시행령 제88조는 가상자산주소별 이동평균법 또는 선입선출법을 통한 취득가액 산출 방식과 2026년 12월31일 기준 시가 산정, 가상자산 간 교환거래에서의 소득 계산 방법 등을 규정하고 있다. 주로 세액 계산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정한 것으로, 고시에서 특정 거래를 양도 또는 대여라고 규정하면 단순한 세액 계산 방법을 넘어 사실상 새로운 과세대상을 정하는 효과가 발생하게 된다.

조형태 홍익대 경영대학(세법 전공) 교수는 “근거를 잡으려면 법의 테두리가 있어야 하는데 구체적인 상위 법률상 근거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과세당국이 선제적으로 규정과 근거를 마련하는 것은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라며 “국민의 납세의무와 과세요건은 법률에 근거해야 한다는 조세법률주의상 명확한 상위법 위임 없이 행정규칙인 고시에서 구체적인 기준을 정리하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자칫 고시에 무리하게 과세기준을 담을 경우 실제 과세 이후 조세불복으로 번질 여지도 있다. 과세당국이 특정 거래를 과세대상으로 보고 세금을 부과했지만, 납세자가 법률상 근거가 없다고 맞설 경우 사실관계뿐 아니라 고시 자체의 적법성을 놓고 조세심판이나 행정소송이 벌어질 수 있어서다. 조 교수는 “규정이 애매한 상황에서 과세를 시작하면 사실관계와 과세근거를 놓고 다툼이 생길 수밖에 없고 과세당국과 납세자 간 조세불복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에 국세청 고시 제정 자문위원단은 고시에 직접 담기 어려운 거래 유형별 기준을 별도의 가이드라인이나 질의응답집 형태로 제시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가이드라인이나 질의응답집 역시 법적 구속력을 가질 수 없는 만큼 근본적인 해법이 되기는 어렵다는 평가다. 탈중앙화금융(DeFi)과 각종 파생거래 등 가상자산 소득의 형태가 갈수록 다양해지는 가운데 새로운 거래 유형이 나올 때마다 가이드라인을 수시로 배포해야 한다는 점도 지속적인 부담이 될 수 있다.

아울러 취득가액 계산과 같은 기술적인 사항만 고시에 담길 경우 납세자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고시 제정 취지 자체가 상당 부분 퇴색할 수 있다는 점도 한계로 꼽힌다. 국세청 관계자는 “가상자산 소득에 과세하도록 규정된 현행 법에 따라 관련 준비를 하는 중”이라며 “가상자산 고시는 논의 중인 사안으로 확정된 내용이 없다”고 말했다.

내년 1월 시행 일정에 맞추기 위해 위헌 소지가 제기되는 과도한 고시 위임이나 법적 근거가 약한 가이드라인에 의존하기보다, 과세 시기를 늦추는 한이 있더라도 모법인 소득세법 자체를 개정해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국민의힘 주식 및 디지털자산 밸류업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상훈 의원은 이데일리 인터뷰에서 “과세 인프라를 충분히 준비하고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을 완료할 때까지 과세를 유예해야 한다”며 “그 기간 가상자산 세제 전반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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