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데일리 성주원 특파원] 미국 10년물 국채금리가 5%를 훌쩍 넘어 24년 만의 최고 수준에 머물고 있는데도 뉴욕증시는 또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높은 금리와 국제유가가 기업과 소비자를 짓누를 수 있다는 우려보다 인공지능(AI) 투자 붐이 기업 실적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기대가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서다. 다만 영화 ‘빅쇼트’의 실제 주인공으로 유명한 투자자 마이클 버리는 현재 주식시장이 ‘슬픔(grief)의 첫 번째 단계인 부정(denial)’에 있다고 주장했다. 사상 최고치 행진 이면에서 AI 낙관론과 과열 경고가 정면으로 맞서는 모습이다.

6일(현지시간)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0.58% 오른 7818.93에 거래를 마쳤다. 사상 처음으로 7800선을 넘어 마감했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지수도 0.45% 오른 2만7599.79로 이틀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는 0.49% 상승한 5만1521.28에 장을 마쳤다.
◇금리 5% 넘는데 주가는 최고…왜?이날 증시에 가장 직접적인 호재는 최근 가파르게 올랐던 국채금리가 한숨을 돌린 것이다. 10년물 국채금리는 전날 장중 5.349%까지 치솟으며 2002년 4월 이후 최고치를 찍었지만 이날 3bp(베이시스포인트, 1bp=0.01%포인트)가량 하락한 5.281%를 기록했다. 30년물 금리도 5.655% 수준에서 움직였다.
국제유가도 추가 급등하지 않았다. 브렌트유는 0.26% 오른 배럴당 100.58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0.01% 상승한 89.44달러에 마감했다.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이 회복되는 가운데 이란의 유조선 공격이 이어지면서 공급 회복과 안보 불안이 맞서는 양상이다.
유가와 국채금리는 최근 뉴욕증시를 흔들어온 두 가지 핵심 변수다. 유가가 오르면 기업 비용과 소비자 물가를 밀어올리고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도 커진다. 그 여파로 국채금리가 상승하면서 주식의 상대적인 투자 매력을 떨어뜨리는 구조다.
올리버 퍼시 웰스파이어어드바이저스 수석부사장은 “유가가 안정되거나 하락하면 에너지발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안이 줄어 국채금리가 내려간다”며 “그 결과 주가가 오르는 것이 최근 몇 주간 시장의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금리가 조금 떨어진 것만으로 사상 최고치 행진을 설명하기는 어렵다. 10년물 금리가 여전히 5.2%를 웃도는 상황에서도 S&P500은 올해 약 14% 상승했다. 블룸버그는 강한 기업 실적과 AI 투자 열기, 미국 경제가 아직 뚜렷한 침체에 빠지지 않은 점을 주가 상승의 핵심 동력으로 꼽았다.
◇“AI가 답”…고금리보다 강한 실적 기대특히 시장은 AI 투자 확대가 기업 이익 증가로 이어질 것이라는 데 베팅하고 있다.
다음 주 본격화하는 3분기 실적시즌이 첫 시험대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S&P500 기업들의 3분기 주당순이익(EPS)이 전년 동기 대비 24%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기술업종은 약 66% 급증할 것으로 전망됐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 집계에서는 S&P500 전체 순이익 증가율 전망치가 30.6%에 달한다.
이날 주가도 이런 기대를 그대로 보여줬다. 데이터센터용 반도체 수요 호조를 이유로 2028년 매출 전망을 높인 마벨테크놀로지는 5% 이상 급등했다. AMD도 리사 수 최고경영자(CEO)가 향후 수년간 반도체 수요가 “매우 높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약 3% 상승했다. 브로드컴도 3% 넘게 올랐다.
AI 열풍은 반도체를 넘어 전력시장으로도 번지고 있다. 구글과 3.59기가와트(GW) 규모의 장기 전력계약을 체결한 컨스텔레이션에너지가 급등했고 다른 독립 발전업체에도 매수세가 유입됐다. AI 데이터센터 확대가 반도체뿐 아니라 전력·에너지 기업에도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기대가 반영됐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전략가들은 미국 증시, 특히 기술주가 추가로 크게 오를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들은 “기술주에 대한 낙관론과 포모(FOMO·상승장에서 소외될 것이라는 두려움)가 거시경제와 정책 불확실성을 압도하고 있다”며 AI·기술주 중심의 상승세에 동참하지 않는 투자자는 시장 수익률을 따라가지 못할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투자자들의 움직임도 기술주 쪽으로 기울고 있다. 씨티그룹에 따르면 주요 시장 가운데 나스닥100 선물의 투자 포지션이 최근 한 주 가장 크게 개선됐다. 신규 위험자금이 유입되면서 나스닥100 상승에 베팅하는 포지션의 힘이 강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중소형주인 러셀2000 선물에는 하락에 베팅하는 포지션이 계속 쌓이고 있다.
◇버리 “지금은 부정 단계”…최고치 뒤 경고음그러나 사상 최고치가 시장의 불안을 모두 없앤 것은 아니다.
마이클 버리는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주식시장은 명백하게 슬픔의 첫 번째 단계인 ‘부정’에 있다”며 “2000년과 2008년을 보면 이 단계는 6~9개월 지속된다”고 주장했다. 2000년 닷컴버블과 2008년 금융위기 당시를 현재 시장과 비교하며 AI 랠리에 경고음을 낸 것이다.
버리는 특히 AI 데이터센터 투자에 들어가는 막대한 자금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최근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감가상각 방식을 문제 삼은 데 이어 사모펀드 계열 보험사들이 보유한 데이터센터 대출과 채권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그는 여러 AI 관련 기업의 주가 하락에 베팅하고 있다.
채권시장에서도 경고가 나왔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 브리지워터어소시에이츠 창업자인 레이 달리오는 중국과 일본의 미국 국채 수요가 줄어들 경우 올해 채권시장이 다시 흔들릴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중국에 대해서는 미국과의 지정학적 갈등 속에서 미 국채를 계속 늘리려 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주식시장 내부에서도 경계 신호가 포착된다.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자료 분석 결과 딜러를 제외한 투자자들은 최근 6주 동안 S&P500 선물을 약 700억달러(약 93조8000억원)어치 줄였다. 약 15년 만에 가장 큰 규모의 포지션 축소 가운데 하나다. 2020년이나 2022년과 비슷한 규모지만 당시와 달리 S&P500지수 자체는 같은 기간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현재 월가의 한켠에는 5%를 웃도는 국채금리와 고유가, AI 투자 과열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고, 다른 쪽에는 이를 뛰어넘는 기업 실적과 AI 투자 증가 기대감이 살아있다. 지금까지는 기대감이 우려를 이기면서 증시를 사상 최고치로 밀어올렸다.
다음 시험대는 실적이다. 시장이 기대하는 기술기업의 가파른 이익 증가가 실제 숫자로 확인된다면 높은 금리를 견디는 현재의 주가 흐름에 힘이 실릴 수 있다. 다음 주부터 본격화하는 3분기 실적시즌에 월가의 시선이 쏠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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