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데일리 김나경 기자] 금융당국이 수도권·규제지역 전세대출 보증비율을 80%에서 70%로 낮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높은 보증비율에 의존해 차주의 상환능력을 꼼꼼히 심사하지 않았던 은행권의 대출 관행에 제동을 걸고, 이를 통해 전세대출이 무분별하게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한 취지다. 은행권에서는 “보증비율이 낮아지면 대출한도가 축소될 수밖에 없고, 전세가율(매매가격 대비 전세가격)이 높은 곳을 중심으로 실수요자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출 보증비율까지 낮출 경우 전세대란이 더 심화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1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금융당국은 수도권·규제지역 전세대출 보증비율을 현행 80%에서 70%로 축소하는 것과 관련 지난달 은행연합회를 통해 은행들의 의견을 물었다. 금융권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전세대출 보증비율 단계적 하향을 지난해부터 언급했다”며 “최근 당국이 업계 의견을 조회한 걸 볼 때 실제 하향도 고려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6·27 가계부채 관리강화 방안을 통해 수도권·규제지역 전세대출 보증비율을 90%에서 80%로 한 차례 낮췄다. 주택금융공사·주택도시보증공사·SGI서울보증보험이 전세대출 보증비율을 축소하면, 은행들은 대출 부도에 대한 자기자본(비용) 부담이 커진다. 부도 발생시 투입해야 하는 비용이 많아지기 때문인데, 은행들은 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출심사를 강화할 수밖에 없다. 전에는 차주의 자기자본이 부족해도 보증기관을 믿고 대출을 했다면 이제는 차주의 상환능력을 보다 꼼꼼하게 살펴보게 된다.

은행권은 전세대출 차주에 대한 상환능력 심사 강화에는 공감하면서도 ‘대출한도 축소→전세대란 심화’ 가능성을 제기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차주의 자기자본 부담을 높여 과도한 부채를 줄이고 전세가격 안정 측면에서 일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며 “반면 전세가율이 높은 지역이나 전세 실수요자의 경우 자금조달 부담이 커져 전세수요가 위축되고, 전세난이 심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은행들은 보증비율 하향에 따른 대출한도 축소는 불가피하다고 보고 있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보증비율이 70%로 낮아진다고 반드시 대출한도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은행의 신용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한도 축소에도 어느 정도 영향이 발생할 수 있다”며 “전세공급이 부족한 상황에서 실수요자의 부담 확대와 전세난 심화가 우려된다”고 했다.
금융당국에서는 전세대출 보증비율 하향은 ‘가야할 길’이라며, 시행시기는 시장 상황을 보고 결정한다는 방침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청년, 취약계층이 아닌 다른 전세대출에 대해서는 보증비율 하향을 통해 가계부채를 관리하겠다는 방침”이라며 “시장이 어떻게 움직일지 업계의 의견을 들어본 것이다. 당장 언제 시행할지 결정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실제 전세시장은 최근 거래량이 급감하고 거래가격은 높아지며 ‘전세대란’이 현실화되고 있다. 지난달 체결된 신규 전세계약은 3634건으로 1년 전의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동시에 5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 전세가격은 직전 주에 비해 0.23% 올랐고, 올해 누적 상승률은 2.61%를 기록하고 있다. 전세계약 자체가 줄어들며 은행들의 전세대출잔액도 이례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국내 예금은행의 전세자금대출 잔액은 2023년말 161조 5613억원에서 지난해말 166조 5570억원으로 5조원 가량 순증했다가, 올해 1분기말 165조 6987억원으로 감소했다.
© 이데일리 & 이데일리TV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