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상윤 황병서 기자] 이재명 대통령이 결국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카드를 먼저 접었다. 표면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의 결단 요구에 따른 자진사퇴지만, 국정 지지율이 취임 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복수의 장관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을 동시에 끌고 가기 어렵다고 판단한 청와대의 정치적 결단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용 후보자를 정리해 인사 부담을 덜고 검찰개혁을 이끌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 방어에 당청의 역량을 집중하려는 ‘선택과 집중’이라는 분석이다.
용 후보자는 1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직에서 자진 사퇴한다고 밝혔다. 그는 민주당이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 겸직 문제에 대한 결단을 요구했고 여당 안에서도 우려가 제기됐다며 “국무위원으로서 소임을 수행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용 후보자 사퇴 직후 “앞으로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인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후보자를 둘러싼 논란을 적극적으로 반박하거나 인선 취지를 거듭 설명하기보다 민심을 수용해 사태를 조기에 수습하는 쪽을 택한 셈이다.
이 대통령이 용 후보자를 지명한 지 14일 만이다. 현역 의원이 성평등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물러난 것은 강선우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이어 두 번째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용 후보자를 정리해 당장의 부담을 덜었지만, 성평등부 장관 후보자가 잇따라 낙마하면서 인사 검증 실패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게 됐다.
◇與 반대가 출구…지지율 하락에 靑도 결단용 후보자는 이날 민주당으로부터 직접 거취 결단을 요구받았다고 공개했다. 그는 민주당이 “후보자와 기본소득당이 처한 상황을 존중하지만,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 겸직을 두고 국민적 공감대가 넓지 못한 상황을 고려해 후보자가 결단해달라”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용 후보자는 “그 뜻을 알기에 깊이 고심했다”며 “국무위원은 국회와 정부를 유기적으로 연결해 협력을 끌어내야 하므로 여당도 우려를 표하는 상황에서 그 직을 수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후보직 사퇴가 “민주진보진영 내 연대 정신을 이어나가는 데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신지혜 기본소득당 최고위원은 민주당 지도부로부터 전날 관련 의사를 전달받은 뒤 당 지도부 논의를 거쳐 사퇴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와 직접 소통했는지에 대해서는 “제가 알기로는 없었다”고 했다.
다만 장관 후보자 인선의 최종 책임이 대통령에게 있고 청와대가 사퇴를 즉각 수용했다는 점에서, 용 후보자의 사퇴는 결과적으로 이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으로 귀결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이 직접 거취 결단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대통령의 지명 철회 부담을 덜어주면서 용 후보자에게 퇴로를 열어줬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최근 ‘국민 눈높이’를 내세워 용 후보자에 대한 압박 수위를 단계적으로 높였다. 김민석 대표는 지난 3일 “국민의 목소리나 판단은 그 자체로 존중한다”고 했고, 박성준 수석대변인은 11일 “국민 눈높이에서 엄중하게 바라보겠다”고 밝혔다. 조계원 대변인도 12일 “청년 세대의 여론이 들끓고 있다”고 지적했다.
용 후보자가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은 법률이 허용하는 원칙”이라며 정면 돌파 의지를 밝혔지만 여권 내 기류를 돌리지는 못했다. 비례대표 의원직과 장관직 겸직 논란뿐만 아니라 배우자의 기본소득당 당직 ‘셀프 임명’ 의혹과 당 사유화 논란 등이 겹치면서 여권 지지층 내부에서도 비판이 확산했기 때문이다.
특히 2030세대의 이탈과 최근 지지율 하락이 이 대통령과 여당의 결단을 앞당긴 요인으로 꼽힌다. 한국갤럽이 지난 8∼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이 대통령의 직무수행 긍정 평가는 전주보다 2%포인트 하락한 38%로 취임 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부정 평가 이유로는 부동산 정책에 이어 인사 문제가 두 번째로 많이 꼽혔다.
청와대가 불과 이틀 전까지 “국민께 설명할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며 인사청문회 개최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도 주목된다. 당초 용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직접 의혹을 소명하도록 한 뒤 여론의 추이를 살피려 했지만, 여당까지 공개적으로 등을 돌리면서 청문회를 강행해 얻을 실익보다 정치적 부담이 크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용혜인 정리하고 김승원 방어 ‘올인’용 후보자 사퇴로 청와대는 인사 전선을 한 곳으로 좁히게 됐다. 향후 인사 정국의 초점은 김 후보자에게 집중될 전망이다.
민주당의 대응도 용 후보자 때와 확연히 다르다. 김 대표는 지난 11일 김 후보자에 대해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잘된 인사라고 판단된다”며 “지킬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엄호했다. 용 후보자에게는 국민 여론을 강조하며 결단을 압박한 반면 김 후보자에 대해서는 임명 관철 의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민주당은 야권이 제기한 코로나19 치료제 임상시험 승인 로비 의혹이 이미 검찰 수사를 거쳐 기소유예로 종결됐고, 대가성 청탁을 뒷받침할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은 만큼 결정적인 낙마 사유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무소속 한동훈 의원 등이 제기한 이른바 ‘오빠’, ‘집들이’ 논란 역시 직무 적격성과 직접적인 관련성이 떨어지는 공세라고 보고 있다.
김 후보자가 이번 개각의 핵심 인사라는 점도 여권이 사수에 나선 배경이다. 이재명 정부는 다음 달 2일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 출범을 앞두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간사로 관련 입법을 주도한 김 후보자의 낙마는 형사사법 체계 전환은 물론 이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에도 타격을 줄 수 있다. 상대적으로 국정 핵심과제와의 연관성이 작은 용 후보자를 먼저 정리해 김 후보자를 지킬 정치적 공간을 확보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다만 김 후보자에 대한 여론도 여권에 우호적이지 않다. 같은 한국갤럽 조사에서 김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응답은 43%로 ‘적합하다’는 응답 22%의 배에 가까웠다. 용 후보자를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며 정리한 뒤 김 후보자 임명을 강행할 경우 야권으로부터 ‘선택적 국민 눈높이’라는 공세를 받을 가능성이 있다. 여권 관계자는 “김 후보자가 청문회에서 기존 의혹을 충분히 해소하면 용 후보자의 사퇴가 인사 부담을 선제적으로 덜어낸 승부수가 될 수 있다”면서도 “반대로 새로운 의혹이 제기되거나 부정적 여론이 더 커지면 용 후보자를 먼저 정리하고도 인사 논란을 수습하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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