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인수제안 묵살 못한다…정부, 이사회 ‘퇴짜 근거’까지 공개 압박

입력시간 | 2026.09.06 15:53 | 김상윤 기자 | yoon@edaily.co.kr



[이데일리 김상윤 황병서 기자] 앞으로 상장회사 이사회가 외부의 공개매수 제안에 침묵하기 어려워진다. 정부가 이사회에 매수가격의 적정성과 주주 이익을 검토해 찬반 의견과 판단 근거를 공개하도록 하는 등 이른바 ‘베어허그 인수합병(M&A)’ 활성화에 나서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와 주주로 확대한 개정 상법과 맞물리면 기업의 M&A 대응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된다.

거액의 인수 제안으로 피인수 기업 이사회를 압박하는 ‘베어허그 M&A’를 형상화한 이미지. [본 이미지는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거액의 인수 제안으로 피인수 기업 이사회를 압박하는 ‘베어허그 M&A’를 형상화한 이미지. [본 이미지는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되었습니다.]

◇“왜 거절했나” 주주에 공개…머스크식 ‘베어허그’ 길 튼다

4일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에 따르면 정부는 M&A 대상 회사의 의견 표명과 관련 정보 공시를 강화하는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가 검토하는 핵심은 새로운 M&A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매수 제안이 주주에게 제대로 전달되도록 공시 규율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사회가 공개매수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와 그 이유를 밝히게 하고, 공개매수에 응할지에 대한 최종 판단은 주주에게 맡기는 시장 중심적인 방식이다. 정부 핵심 관계자는 “정부가 펀드를 조성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베어허그 M&A를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일부 제도를 시장 친화적으로 바꾸는 것에 방점을 찍고 있다”고 언급했다.

현행 자본시장법 제138조는 공개매수신고서가 제출되면 피인수 기업이 해당 공개매수에 관한 의견을 표명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다만 의견 표명이 선택 사항이어서 이사회가 침묵하거나 충분한 판단 근거를 제공하지 않더라도 이를 강제하기 어렵다.

금융위는 이를 의무화해 피인수 기업 이사회가 공개매수에 대한 찬반 의견과 그 사유 등을 공시하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이사회는 공개매수 가격의 공정성과 거래가 회사 및 전체 주주에게 미칠 영향을 검토해 찬반 입장과 판단 근거를 공개하게 된다. 인수자의 자금조달 능력과 인수 이후 사업계획 등 구체적인 검토·공시 항목은 향후 제도 설계 과정에서 정해질 전망이다.

이사회가 인수 여부를 대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주주가 공개매수에 응할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의견과 정보를 제공하는 데 방점이 찍힌다. 경영진이나 지배주주가 경영권을 지키기 위해 공개매수에 침묵하거나 별다른 설명 없이 반대하는 관행에 제동을 걸겠다는 취지다.

베어허그는 인수 희망자가 시장가격보다 높은 가격과 인수 조건을 공개해 이사회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는 M&A 전략이다. 별도의 해외 제도가 아니라 이사회가 쉽게 거절하기 어려울 만큼 매력적인 조건을 공개적으로 제시해 주주와 시장의 압력을 끌어내는 방식이다.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는 공개적인 고가 인수 제안이 이사회를 협상 테이블로 끌어낸 대표적인 베어허그 사례다. 머스크는 2022년 4월 주당 54.20달러의 현금 인수안을 트위터 이사회에 제시하고 이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시를 통해 시장에 알렸다. 이는 자신의 지분 취득 사실이 공개되기 전 주가보다 38% 높은 가격이었다.

트위터 이사회도 포이즌필 도입 사실과 취지를 공개한 데 이어 머스크가 465억달러 규모의 자금조달 계획을 내놓자 인수안을 다시 검토했다. 이후 이사회는 재무·법률 자문을 거쳐 440억달러 규모의 합병계약을 만장일치로 승인하고 위임장 설명서 등을 통해 협상 과정과 매각 찬성 이유를 주주에게 공개했다.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개정 상법과 결합해 이사 책임 강화…‘반대 근거’도 검증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아연은 경영권 분쟁 당시 공개매수에 대한 반대 입장과 그 이유를 신속하게 시장에 알린 사례로 꼽힌다. 공개매수가 시작된 당일 의견표명서를 내고 영풍·MBK파트너스 연합의 공개매수가 국가기간산업의 경쟁력과 중장기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소액주주를 비롯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침해할 수 있는 ‘약탈적 M&A’라고 주장했다.

다만 고려아연의 공시는 주당 66만원이라는 공개매수가격이 적정한지, 독자경영으로 주주에게 더 높은 가치를 제공할 수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분석한 수준까지 나아가지는 않았다. 당시 의견 표명 자체가 법적 의무가 아니었고, 가격의 공정성과 주주가치 영향을 일정한 기준에 따라 설명하도록 하는 규율도 없었기 때문이다.

금융위가 추진하는 제도 개선은 이처럼 기업의 선택에 맡겨졌던 의견 표명을 의무화하고, 찬반 입장뿐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판단 근거까지 주주에게 제공하도록 하는 데 의미가 있다. 기업별로 달랐던 대응을 표준화해 이사회가 공개매수가격의 적정성과 전체 주주에게 미칠 영향 등을 설명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회사 및 주주’로 확대한 개정 상법과 결합하면 공시 의무화의 실효성은 더욱 커질 수 있다. 상법이 이사회에 회사와 주주를 위한 판단 의무를 부과한다면 공시는 이사회가 매수가격의 공정성과 주주가치 영향을 실제로 검토했는지 시장이 확인하는 장치가 되기 때문이다.

높은 가격의 공개매수에 반대한다면 가격이 회사의 적정 가치를 반영하지 못한다고 본 이유와 독자경영이 주주에게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근거 등을 제시할 필요성이 커진다.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다했는지를 둘러싼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재계는 반발하고 나섰다. 재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에는 포이즌필 등 적대적 M&A 방어수단이 충분하지 않은데 인수 제안을 공개해 이사회를 압박하는 장치와 이사의 책임만 강화하면 공격자에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 있다”며 “투기성 제안을 걸러내고 합리적인 절차를 거친 이사회의 경영 판단을 보호할 안전장치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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