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경은 기자] 증시 상승세에 퇴직연금을 회사가 운용하는 확정급여형(DB)에서 가입자가 직접 굴리는 확정기여형(DC)으로 갈아탄 직장인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증시가 고점을 향하던 6~7월에만 약 15만명이 DC형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이후 증시가 급락하면서 일부 가입자는 두 달 만에 10% 넘는 손실을 봤다. 한번 DC형으로 옮긴 기존 적립금은 DB형으로 되돌리기 어려운 만큼 단기 수익률을 좇은 전환을 막기 위한 보호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5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성훈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6~7월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한 가입자는 14만9710명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5만3242명보다 181.2% 증가한 수준이다.
특히 7월 전환자가 크게 늘었다. 6월 4만3974명이던 전환 가입자는 7월 10만5736명으로 한 달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올해 1~7월 누적 전환자는 34만156명으로 전년 동기 15만5947명보다 118.1% 늘었다. 올해 전환 가입자의 44%가 6~7월 두 달에 집중된 셈이다.
DB형에서 DC형으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늘어난 시기는 증시가 가파르게 상승한 시점과 겹친다. DC형 전환은 신청부터 완료까지 통상 한 달가량 걸린다. 이를 고려하면 7월 전환자 상당수는 코스피가 고점을 향하던 6월께 직접 운용을 결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연초 4200선에서 출발한 코스피는 지난 6월 19일 장중 9385.59까지 오르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전환 직후 증시가 방향을 틀면서 직접 운용에 나선 가입자들이 하락장의 충격을 고스란히 받았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에서 올해 4~6월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한 가입자들의 7~8월 단순 기간수익률은 각각 -10.7%, -10.2%로 집계됐다. 이는 두 증권사 가입자를 대상으로 한 수치로 전체 DC형 전환 가입자의 수익률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이미 DC형으로 옮긴 적립금을 다시 DB형으로 되돌리기 어렵다는 점이다. 현행 고용노동부 행정해석상 DB형에서 DC형으로 전환하면서 이전한 기존 적립금을 다시 DB형 적립금으로 옮기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전환 과정에서 과거 근속기간에 대한 퇴직급여를 정산해 DC 계좌로 이전하기 때문이다.
회사가 DB형과 DC형을 모두 운영하고 노사가 관련 규정을 마련했다면 향후 근속기간부터 다시 DB형을 적용하는 것은 가능하다. 이 경우에도 기존 DC형 적립금을 되돌리는 것은 아니며 과거 근속기간 역시 복원되지 않는다.
DB형은 퇴직 시점의 임금과 근속기간 등에 따라 퇴직급여가 결정되는 반면 DC형은 회사가 매년 일정 부담금을 넣고 가입자가 직접 운용해 최종 수익률에 따라 퇴직급여가 달라진다. 특히 임금 상승 가능성이 높고 퇴직까지 남은 기간이 긴 가입자라면 단기적인 증시 흐름만 보고 전환 여부를 결정하는 데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전환 시 가입자가 결정을 다시 생각할 수 있도록 숙려기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박 의원은 “노후자금의 운명을 바꾸는 중대한 선택인데도 정부는 상승장에 휩쓸린 ‘묻지마 전환’을 사실상 방치했다”며 “단기 수익률에 현혹돼 성급한 전환이 반복되지 않도록 위험고지와 투자교육을 강화하고 숙려 절차 등 실질적인 보호장치를 즉각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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