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최정희 기자] 2021년 8월, 20대 여성 김 씨(가명)는 직장 동료의 소개로 한 남성을 알게 됐다. 23일 첫 연락, 24일 첫 만남. 여느 소개팅과 다르지 않았다.
첫 만남 뒤 남성은 “우리 오늘부터 1일 하자”는 메시지를 보냈다. 여성은 “당장은 조금 그렇고, 천천히 알아가 보는 게 좋겠다”고 답했다.
싫은 건 아니었다. 이튿날 두 번째 저녁을 먹은 뒤 둘은 “보고 싶다”, “나도”라는 메시지를 주고받았고, 여성이 “오빠 생각 중”이라고 메시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 다만 남성이 ‘자기’라고 부르자 여성은 “너무 빠르다”며 선을 그었다. 호감은 있지만 속도는 늦추고 싶다는 뜻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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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만남 뒤 나흘이 지난 27일, 남성은 아침에 여성을 직장까지 태워 줬고 저녁 6시에 다시 만나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차를 타고 가던 길, 남성은 모텔 한 곳을 가리키며 “같이 갈래?”라고 물었다. 여성은 싫다고 했다. 남성은 차를 몰고 인근 공원으로 향했다. 주차 후 남성이 입을 맞추려 하자 여성은 거부했다. 남성은 “뽀뽀는 하지 않을 테니 뒷좌석으로 가자”고 했고, 두 사람은 뒷좌석으로 옮겼다.
저녁 8시 40분. 이때부터 20분 동안 벌어진 일이 5년이 지난 지금까지 법정 공방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좁은 뒷좌석에서 성관계가 있었다는 데는 두 사람 모두 다툼이 없었다. 쟁점은 하나, 강제였느냐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말은 엇갈린다.
그 직후의 모습은 평범한 연인 같았다. 둘은 사귀기로 했고, 남성은 여성을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날 밤 두 사람은 “오늘 행복했다”, “나도”라는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다음 날 만날 시간까지 정했다. 28일 아침에도 출근 인사가 오갔다.
분위기가 바뀐 건 그로부터 두 시간 뒤였다. 여성은 “오늘 예약한 거 미루자”고 메시지를 보냈고, 이어진 통화에서 그만 만나고 싶다고 했다. 여성은 어제 싫다고 했는데도 남성이 힘으로 밀어붙였고, 그래서 존중받지 못했다고 느꼈다고 남성에게 말했다.
이날 오후 남성은 자신을 ‘여성의 마음과 몸을 아프게 한 죄인’이라고 쓴 메시지를 보냈다. 여성은 그날 밤 이별을 통보했다.
이틀 뒤 남성은 여성을 소개해 준 동료에게 “난 적당히 튕기는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사고였어”라고 했다. 31일 통화에서는 여성에게 “내가 강압적으로 한 것은 인정할게”라고 말했다.
여성은 상담과 진료를 거친 뒤 9월 17일 남성을 경찰에 성폭력 혐의로 신고했다.
그런데 그해 12월, 경찰은 사건을 검찰에 넘기지 않기로 했다(불송치). 여성이 성관계가 싫었다면 벗어날 수 있었고, 관계 직후의 행동과 메시지가 피해자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였다.
여성은 포기하지 않았다. 경찰 결정에 이의를 제기해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검찰은 2022년 9월 남성의 혐의가 인정된다는 의견을 냈지만, 2023년 4월 판단을 뒤집었다. 남성이 저항을 막을 정도로 폭행하거나 위협했는지 분명하지 않다며 재판에 넘기지 않기로 한 것이다. 윗선 검찰청에 다시 판단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그해 9월 이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여성은 법원에 직접 호소했다. 법원이 나서서 재판을 열게 해 달라는 요청이었다(재정신청). 2024년 1월 법원은 여성의 손을 들어줬다. 유죄라는 뜻이 아니라, 법정에서 따져 봐야 할 사건이라는 의미였다. 같은 해 5월, 남성은 재판에 넘겨졌다.
사건이 있었던 그날 밤으로부터 3년 가까이 지나서였다.
이 긴 시간 동안 두 사람의 말이 가장 크게 엇갈린 것은 그날 여성이 입은 바지였다.
여성은 허리가 고무줄인 밴딩 슬랙스를 입었다고 했다. 남성은 단추 달린 검정 청바지였다고 했다. 고무줄 슬랙스라면 저항해도 힘으로 벗길 수 있다. 단추 달린 청바지라면 사정이 다르다. 여성과 남성의 진술이 달랐기 때문에 그날의 바지는 이 사건의 진실을 가릴 ‘스모킹건’이 된다.
바지는 2년 5개월 동안 여성의 옷장에 있었다. 여성이 그 바지를 검찰에 낸 것은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진 직후인 2024년 1월이었다. “증거물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해 따로 보관했다”는 말과 함께였다.
이 바지 한 벌로 앞으로의 판결이 두 번 뒤집히게 된다.
이어서
2년 넘게 옷장 속에 있던 바지가 뒤집은 판결②[그날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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